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벨룽의 노래 (문단 편집) == 실제 역사와의 관계 == 한편 실존했던 [[부르군트족]]과 유목민으로 설명되는 [[훈족]], 실존인물인 군터([[https://en.m.wikipedia.org/wiki/Gunther|군다하르]]) 왕과 에첼([[아틸라]]), [[디트리히 폰 베른]]([[테오도리크 대왕]]) 등이 등장하며 실제 사건과 실존하는 지역을 소재로 삼아서 현실성을 높였으며, 이런 점들이 이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또한 기사도의 명예와 정의, 신앙 등이 강조되면서 북유럽 신화 특유의 폭력성과 잔인함도 많이 순화되었는데, 예를 들어 전설에서는 브륀힐트가 시구르드뿐만 아니라 그의 어린 아들 시그문드도 살해하고 그 둘이 화장될 때 자신도 불길에 뛰어들어 같이 죽지만 니벨룽의 반지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빠졌다. 또한 많은 학자들은 브륀힐트의 캐릭터가 [[프랑크 왕국#s-2.1|메로빙거 왕조]]의 [[브룬힐트(프랑크 왕비)|브룬힐트]](Brunhilda of Austrasia, 543–613)에서 기원했거나 최소한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가설에서는 지크프리트의 모델로 6세기 [[메로빙거 왕조]]의 [[시게베르 1세]](Sigebert I, 535-575)가 많이 거론되는데, 이름 Sigebert가 Siegfried와 나름 비슷하고, 상당히 용맹했으며, 인생의 절정기에 자객에게 암살된 것, 그의 부인이었던 브룬힐트(Brunhilda of Austrasia)가 [[브륀힐드]] 캐릭터의 원조로 유력하다는 것 등이 시구르드의 원조로 주목받는 이유이다. 시게베르 1세의 아내 브룬힐트와 [[킬페리크 1세]](Chilperic I, 539-584)의 아내 [[프레데군트]](Fredegunda)는 유럽사에서도 유명한 불구대천의 원수관계였다. 물론 브룬힐트에게는 동생이 프레데군트와 킬페리크 1세엑 살해당했으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긴 했다. 이 두 사람 때문에 본인들의 남편들까지 원수지간이 되었는데, 결국 전쟁이 벌어져서 시게베르 1세가 킬페리크 1세를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하지만 프레데군트가 보낸 자객들이 시게베르 1세를 암살하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다만 원작자가 설령 시구르드/구드룬의 전설과 다른 전승을 바탕으로 했더라도 이 작품의 제목 자체가 신화에서 유래한 이름인 '니벨룽'의 노래라고 되어 있고[* 니벨룽은 신화에서 군나르왕과 [[구드룬]]이 속해있는 니플룽(Niflung)가문의 독일식 발음인데, 군나르와 구드룬에 대응되는 군터왕과 크림힐트는 부르군트족 소속이다. 따라서 내용 측면에서만 보면 '부르군트의 노래'라고 제목을 붙이는 게 더 어울리겠지만 좀 더 상징성을 강화하고 신화와의 관련성을 강조하기 위해 니벨룽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무리한 설정을 해가면서 신화의 내용을 따라가려고 한 부분도 많기 때문에[* 예를 들어 1부 초반에 하겐이 군터왕에게 지크프리트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시구르드의 전설과 상당히 비슷하다.] 북유럽 신화를 많이 참고한 것만은 확실하다. 의외로 에첼은 아틸라로서의 역사적인 이미지나 북유럽 버전과는 달리 보물을 탐내거나 적극적으로 부르군트를 멸망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크림힐트의 형제들을 초대한것도 순수하게 '아내가 형제들을 그리워해서' 이며, 하겐이 자신의 아들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명예로운 기사라고 추켜세워준다. 이 점은 당시 유럽에서 아틸라가 헝가리의 민족영웅으로 대접받던 시절이라 이런 정세에 영향을 덜받는 북유럽과는 달리 독일쪽에선 그를 악역으로 묘사하기 힘들었던게 이유로 추정된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